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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by 민초그린 2025.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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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는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철종 때 1860년에 동학 창도. 

자국의 동포 수만 명을 죽이고 다치게 하고서도 그 왕조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2만이나 되는 자국의 농민과 수공업자들을 모두 죽이고도 왕실이 생명력을 다해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었단 말인가? 

최시형, 전봉준, 김대건. 

19세기 조선에는 전염병이 내내 창궐했다. 1819년 12월부터 22년 12월 1일 사이 인구수. 651만에서 647만으로 3년 동안 4만 감소. 코레라 대유행에 따른 인구 감소. 

콜레라는 1821년 이후 주기적으로 10년마다 나타나 우리 조선 강토를 어지럽혔다. 

1855년 동학교도들은 우선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방법 개발.

너도 한운ㄹ님, 나도 한울님, 따라서 전염병 즉 괴지롣 한울님입니다. 따라서 한울님으로 대하면 댑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지 마세요. 화장실은 집에서 멀리 떨어트려 지으십시오. 숟가락과 젓가락은 반드시 자기 것은 자기만 쓰고, 쓰고 나면 깨끗이 씻어서 보관하십시오. 찌개나 국은 절대 다 함께 한 그릇에 퍼서 드시지 마세요. 반드시 어느 정도 떨어져 앉으십시오. 반드시 세수를 깨끗하게 하시고 꼭 손을 깨끗하게 씻고 다니십시오. 반드시 옷과 속옷 또한 깨끗하게 새탁해서 입으십시오. 한울님 대접을 받고 있으니까요.

1860년경부터 콜레라가 돌아도 관아에 의존하지 않았다. "동학을 믿으면 콜레라에 안 걸린다던데?"

19세기 중엽부터 조선의 백성들은 관아를 찾지 않았다. 1893년 호남 지역 대기근과 콜레라의 여파로 세수가 1/3 줄어들었다. 매관매직으로 지방관이 된 조병갑을 위히산 관료들이 조세 품목과 양을 최대 풍년이 들었던 1888년 기준으로 잡아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항의하러 간 전창혁은 고부 군수 조병갑에게 곤장을 맞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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