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키가 작고 단단하다고 해서 '녹두장군'이라 불렸던 전봉준 장군.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벼슬을 하지 못했다.
서당 훈장일도 하고 약도 팔고 다양한 일을 했다. 19세기 조선사회는 내외적으로 혼란기 및 격동기였다.

정읍시 이평면 조소리 전봉준고택






전봉준 재판 - 권설재판소
일본의 내정간섭. 6회. 61명 조선인 심문. 이노우에 가오루 공사 주관. 우찌다 영사가 참여. 일본인이 이끌어감
치욕스러운 재판.
공초라는 재판 기록이 남음.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동학농민군의 기록이 남음. 조선 정부와 일본군의 기록만 남았을 것이다.
일본부대 미나미 고시로. 현장에서 전봉준 장군 심문. -역사 왜곡
1895.3.29. 선고하고 3.30 집행한다.
4월 1일(음)부터 사법제도가 1심 원칙에서 재심 제대로 바뀜. 고등재판소에서 재심이 가능하다.
4월 25일이 법의 날이다.
https://youtu.be/xAWATlEisp8?si=TNnRVjPB-I99_vkg

서울에서 재판 받으러 가는 모습. 전봉준 장군의 사진과 메켄지가 찍은 의병 사진이 있어 참 다행이다.

반응형
'동학농민혁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삼례봉기역사광장 (0) | 2025.04.15 |
|---|---|
|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1) | 2025.04.10 |
| 집강소 - 최초 지방자치, 한국민주주의의 기초 (0) | 2025.03.13 |
|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3) | 2025.02.18 |
|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0) | 2025.02.18 |